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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8장에서 에베소에 들러 유대인들과 변론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에베소에 더 오래 있기를 청했으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에베소를 떠납니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고 갈라디아, 브루기아 지역을 다닌 후 에베소에 다시 도착합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여정을 보면 그 가운데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일을 감당한다고 했을 때, 그 일을 하도록 하신 하나님에서 하나님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셨을 때, 그 역할을 행함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말씀을 통해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은 그 시작도 그러했고 끝도 그러했으며 중간의 과정 또한 그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하고 순종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고 어떤 일을 맡기셨다면 그 과정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뜻을 보이시고 계속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전합니다. 그로 인해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열 두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 이후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세 달간 강론합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이 순종치 않고 하나님의 도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합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에베소에서 일을 했고,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 헬라인 모두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살펴본 과정과 같이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잘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 침례 요햔의 회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죄사함에 대해서 '열 두명' 에게 전했습니다.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에베소에 있었던 유대인 회당에서 세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합니다. 에베소 지역에 있었던 사람은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교제를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 에베소에 거하던 '유대인' 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후, 핍박과 비방으로 인해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그 가운데서 날마다,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이 때, 아시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통해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은 열매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도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했으며, 이후에 두란노 서원에서도 매일 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가운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숫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두 해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서 믿지는 않았을지라도 최소한 한 번 쯤은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은 꾸준히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른 방법이나 어떤 활동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더 모여들만한 일을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주의 말씀을 전하기만 했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아시아 지역에까지 퍼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순종함으로 모임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나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의 관습을 따라, 나의 생각을 따라 말씀과는 다른 것들을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임 안에서 받은 은사 가운데 섬기는 것, 직장에서, 학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주님에 대해,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 증거하고 삶을 통해 간증을 나타내는 것, 가정에서 주님께서 주신 역할에 따라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 그것에 더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뭔가가 부족해서, 내가 더 추가하고 바꿀 때 더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말씀을 신뢰함으로 그 가운데 묵묵히, 조용히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은 전파 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적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이적과 기적은 일반적인 경우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에게 이와 같이 행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능력과 지혜를 공급하십니다. 우리가 이적과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주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내 생각대로 말씀을 벗어나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행하신 그 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0)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은 능력에 대해서 사단은, 세상은,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영광을 취하고자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바꾸시어 오히려 주의 말씀이 힘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주의 말씀이 힘을 얻는 데 있어서 세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17) 주의 이름을 먼저 높였으며, (18) 믿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깨달았으며, (19) 전에 행하던 모든 것들을 헛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증거했습니다. 이 때,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주님의 이름을 먼저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나 건물이나 어떤 지식이나 재물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보다 더 높아질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동일하게 높아지시고 영광 받으시고, 경배 드리기에 합당하신 분은 주님 한 분 뿐입니다. 주님과 비교할 때, 내가 어떤한 자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형편 없는 나를 구원하셨음을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크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 받은 이후, 전에 내가 따르던,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헛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가치로는 엄청나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섬기는데,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단호하게, 분명하게 끊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의 모습과 간증을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나의 삶을 통해 드러나고 나타날 때, 오직 주님의 말씀이 힘을 얻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부분이 참 어렵습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깨닫고, 주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시어 구원하셨음을 앎으로 주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삶을 보면 이전 죄의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을 얻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나는 여전히 좇고 있습니다. 직장 동료, 가족들에게 간증이 되지 않는 모습들이 여럿 있습니다.
(19) 마술을 행하던 많은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불태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을 혼자서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고 믿는 자들을 함께 모으셨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길을 함께 걸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우리들은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마칠 수 있도록, 주어진 달려갈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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