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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가려 할 때, 사도 바울은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들을 인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줌으로 인해, 유대인으로부터의 유익하지 않은 변론이나 다툼을 막았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유대인들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 때, 디모데의 할례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갈 5 :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갈 5 :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고전 7 :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만일, 할례를 받는 사람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할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의미가 없는, 아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육체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고전 9 : 19, 20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기록된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몇몇 사람들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은 때로는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율법 없는 자와 같이,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도의 유익을 위해서,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그와 같이 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며, 할례 받지 않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 2 :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 중에는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전해졌던 것으로 보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진 자유를 엿보고 그것을 통해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에 종노릇하도록 종으로 삼고자 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갈 2 :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때에 따라서 할례가 필요한 경우에는 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할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리스도께, 교회에게 더 유익이 되는 쪽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고 받지 않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더 많은 사람을 얻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고전 8 :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9 :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후 3 :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이 가운데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함은 말씀에 순종하는 범위 안에서 허락된 자유여야 합니다. 복음의 진보를 위해,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서까지 자유함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통해 구원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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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교회에서 논의되어 결정된 규례를 이방 여러 교회에게 전하여 주며 지키게 할 때, 많은 교회의 믿음이 굳어졌습니다. 이방 교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듣고 지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었으나, 앞선 장로들과 사도들이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결정한 내용이었습니다. 흔히들 믿음이 굳어진다는 말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믿음이 굳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고 성취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했던대로, 기도했던대로 일이 일어나고 바라던대로 어떤 것을 이룩할 때, 믿음이 굳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굳어지는 것은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일어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믿음이 굳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경험을 통해 믿음이 굳어집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방 교회들은 믿음이 굳어진 후에 수가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이 두 가지 중에 뒤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믿음이 굳어지는 것보다는, 수가 날마더 더해지는 것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물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 가운데 더해지기 위해서는, 믿음이 굳어지는 것이 선행 조건입니다. 또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규모, 외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주님에 대한, 말씀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굳게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때,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모임 가운데 수를 더하게 하십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을 보내시어 복음을 교제토록 하십니다. 우리는 주변의 영혼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고 말하면서 동시에 믿음의 삶을 굳건히 살아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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