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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그 무리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믿는 자들도 있었고 또한 핍박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핍박했던 유대인들은 야손의 집에서 사도 바울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그 형제의 무리에게 해를 가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주 동안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어디에 거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을 끌어내려고 야손의 집에 달려들었던 것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은 그 집에서 거하며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손의 입장에서 살펴볼 때, 그는 사도 바울과 무리들을 잘 대접했을 뿐입니다. 롬 16 : 21 에 따르면 야손은 사도 바울의 친척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할 때, 야손도 그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데살로니가에 거하던 야손은 아마도 믿는 자였을 것이고 성도의 합당한 예절에 따라 사도 바울과 그 무리를 대접했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야손과 형제는 옥에 갇혔고 지금의 보석금에 해당하는 '보'를 내고 풀려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전반적인 말씀을 통해서 볼 때, 믿는 자들 가운데 어떤 세상적인 축복이나 성공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영적인 축복,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거듭남과 구원을 받는 역사는 꾸준히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영적인 축복을 받은 성도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겪습니다. 오늘 기록된 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 무리를 대접했다는 이유로 끌려갔으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일이 있을 때 그들이 취한 행동은 보를 내고 풀려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참 억울하고 합당치 않은 이유로 잡혔을지라도 그들은 그 당시의 법과 읍장들의 명에 따랐습니다. 그 제도에 따라서 보를 내고 풀려났습니다. 야손의 무리들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핍박과 세상으로부터 받는 미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당황하지 않고, 분 내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 거하는 믿는 자들은 어려움과 핍박, 고난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다니, 와 같이 핍박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마땅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주님의 자녀로서 선한 간증을 가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여러 예들을 볼 때, 안타깝고 억울하며 화가 날 만큼의 핍박이 있을찌라도 그것에 대항하지 않습니다.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본을 기억해야 합니다.
벧전 4 : 12, 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 3 :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무리의 반응은 세 가지였습니다. (32 - 34) 기롱하는 자들이 있었고, 네 말을 다시 듣겠다 말하는 자도 있었으며, 바울을 친하여 믿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할 때 주로 나타나는 태도는 앞의 두 가지 예 입니다. 겉으로는 아닐지라도 속으로 조롱하기도 하며, 다음에 다시 들을 것과 같이 미루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구원 받는 자들은 그 순간 전해지는 복음에 대해, 말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듣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34) 사도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대해서 전했을 때 몇 사람은 사도 바울에게 착 들러 붙었습니다. (cleave) 그리고 즉시로 계속해서 듣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디오누시오, 다마리, 다른 몇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롬 1 :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 같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볼 때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친히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어 믿을만한 증거를 또한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말씀을 오늘날까지 전하도록 하심으로 부인할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애써 하나님을 부인하며 자신이 원하는, 육체가 기뻐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점진적으로, 나의 생각대로, 계획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참 진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때, 내 생각은 내려놓을 수 밖에 없으며 자연히 그 사실에 붙잡히게 됩니다. 구원의 문제를 즉시로 혹은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말씀에 대한 순종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교훈을 받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 즉시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깨달은 말씀대로 순종하고 삶이 즉시로 변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 실족하여 넘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받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교훈 받은 말씀은 말씀대로, 내 삶은 삶대로 나누어진,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합당한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육적인 양식을 먹고 자라가듯이 영의 양식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자라며 성숙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육체적으로 자라거나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가 먹는 양식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그 양식을 먹는 이에게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동일하게 어떤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정체 상태에 있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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