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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들어가 주님에 대해 말합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주님을,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주님을 믿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선동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악감을 품도록 했습니다. 이 때, 사도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는 이고니온에 오래 있으며 특별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바뀐 이방인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들의 마음에 맞는,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3절에 기록된대로 그들은 오직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 생각에 듣기 좋은, 설득될만한, 논리적인,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단지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에 대해서만 증거했습니다. 그 이후, 나머지는 주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를 힘입어 말할 때, 주님께서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두 사도를 통해서, 그들을 사용하시고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도, 교훈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우리의 생각대로, 사람의 입맛에 맞는대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전해져야 합니다. 말씀을 의지함으로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는 비로소 그 때 자기 은혜의 말씀을 연약한 우리를 통해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을 지나 루스드라에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더베로 가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이 길에서, (21) 그들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보았던 대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음의 말씀이 풍성히 전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 가운데로 돌아온 것. 또다른 하나는 두 사도를 크게 핍박한 것입니다. 아는대로, 두 사도는 담대하게 복음의 말씀을 증거했으나,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과 핍박,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 두 가지 중, 사도 바울이 먼저 생각한 것은 복음이 증거되어 교회가 세워진 사실입니다. 그가 당한 어려움과 고난보다는,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또한 이방 지역에 교회가 세워진 사실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성으로 돌아가는 편을 택합니다.
그 성에서 사도 바울은 세 가지를 합니다. (22, 23) 먼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합니다. 이 지역의 성도들의 대부분은 구원 받은지 얼마 안된 자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세상의 여러 것들에 의해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은, 내가 받아들인, 내가 내 삶의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가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분께서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으며,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어 오늘날도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나를 자녀 삼으시고, 이제 나는 이전과 같은 생활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하는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흔들립니다. 마음이 변화합니다. 그 때, 오직 말씀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번째로, 제자들에게 믿음 가운데 거하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믿음 가운데 거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이 말씀을 온전히 믿었으며 또한 그대로 순종하며 받아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연약해서 어려움 가운데, 핍박 가운데, 환난이나 곤고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특히,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지 얼마 안된 이방인들은 더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어려움이 생기면, 이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잘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을 믿는 성도라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행복하며, 항상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신실히 믿는 성도가 교통사고가 나거나 건강에 큰 어려움이 있다면,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맞는가? 라고 되묻는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며, 잘못된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행복과 주님을 믿는 것은 전혀 별개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들에게 특별히 그와 같은 믿음 가운데 거하라고 합니다.
요 15 :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7 :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요일 3 :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셋째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그들을 그들이 믿은 주님께 부탁하며 기도합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에서 장로로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도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 교회의 성도들도 그렇겠지만, 특별히 장로들은 더 어려움과 핍박이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모함을 당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혹은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들을 불러 모아 주님께 의탁을 드립니다. 주님께 부탁을 드립니다. 이 주님은 그들이 전에 믿은 분입니다. 모임의 장로들은 주님을 믿었던 그 믿음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며 모임 가운데 더해지는 자들을 돌보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 순간 이들을 다시금 주님께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며 생기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때, 그 누구에게 그 일을 의탁하며 간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그런 어려움에 대해 교제하고 나눕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김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본을 보이신 것과 같이 단지, 주님께 의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벧전 2 :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 :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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