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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고보는 칼로 죽음을 당하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다가 건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일하셨습니다. 야고보도, 베드로도 모두 훌륭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죽임을 당했고, 베드로는 살았습니다. 이것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행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가지신 것입니다. 그 분의 뜻 가운데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고보도, 베드로도 그 일어난 일에 대해서, 그와 같은 일을 허락하신 주님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의 뜻이 더 높고 더 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주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혹은 성도들과 비교를 합니다. 나는 이와 같이 적게 쓰시는데 다른 이에게는 더 큰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을 보며 의문을 같습니다. 각자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역사하시는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확실히, 그리고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선하신 뜻 가운데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분의 주권을 과연 우리는 인정하고 순종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분의 주권을, 계획을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는 항상 좋은 것을, 최고의,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오직 그 분의 인도하심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2. 베드로는 온전히 순종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았습니다. (7 - 11)
베드로는 쇠사슬에 매여, 군사들 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베드로를 감옥에서 꺼내십니다. 기록된 말씀을 보면, 천사가 베드로를 깨우고 일어나라, 띠를 띠고 신을 신어라, 말했을 때 베드로가 그대로 했으며,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했을 때, 나와서 따라갔습니다. 계속해서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나가는 쇠문까지 나갈 때,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베드로는 정신이 나서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자신을 건지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주님을 아는데까지 자라갈 수 있도록,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님을 닮도록 계속해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께서도 도우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바로, 베드로와 같이 순종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신 것, 그리고 삶의 방향성, 가치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로 안내하실 때,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대로,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삶의 순간순간마다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을지라도, 욥과 같이 죽기까지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를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 선하신 뜻대로 인도하심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라는 것입니다.
3.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가 억울하게 죽었을 때도, 베드로가 구체적인 사유 없이 감옥에 잡혔을 때도,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공회 앞에 나아가 베드로를 내놓으라고 데모하지 않습니다. 억울한 야고보를 대신하여 행진을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모습은 사도행전과 신약 여러 부분에 걸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도 스데반이 죽은 이후, 교회는,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은 스데반을 위하여 크게 울었을 뿐, 핍박이 있을 때 대항하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예루살렘에 머물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복음이 유대인뿐만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훨씬 먼 곳 까지도 전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의, 지역 모임의 모습도 이와 같기를 바랍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교회는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벧전 2 : 18, 19)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우리의 역할은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 모임은 어떤 세상의 유익을 얻는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대로, 순종하고 따름으로써 하나님께,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그 귀한 피로 값 주고 교회를 사신 이유입니다. 순전하게 말씀을 알고 배우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깨달으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 지역 교회의 가장 최우선의 목표는 그것입니다. 모임에 속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 답게, 주님을 닮도록 만들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머리 되신, 주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 더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며 오히려 말씀과는 다른 가르침임을 보게 됩니다.
오늘 날 많은 교회들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세워졌으며 또한 그렇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목적을 우리는 말씀에서,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람의 합리적인 생각이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교회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합당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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