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1.

 

(1 - 3)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해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오히려 그를 힐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밖에 있던,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지 못한 이방인들만을 생각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가 합당하지 못한 사실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보다는 자신들이 생각을 우선했습니다. 10장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과 같이,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그 사실만을 생각하여 베드로를 힐난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분명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거룩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에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야 한다, 하기 때문에 거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말씀하셨으나,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을 뿐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우선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유대인과 같이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따라서 살아가지 않으며, 그와 같은 것들을 더 앞선 가치로 두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며 그것에만 순종합니다.

 

1-1.

 

(22)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 믿는 사람들이 더해졌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바나바를 보냅니다. 그를 통해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에 이방인과 함께 교제한 베드로를 힐난한 그들이, 이제는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베드로를 통해 듣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이와 같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 가운데 분명히 적용되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예전의 모습과 전혀 반대인 모습이라 할찌라도 말씀을 깨달은 자의 모습은 달라야 합니다. 그것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나님을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2.

 

(4 - 17) 베드로는 자신을 힐난하는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것을 자신에게 어떻게 나타내셨고 또한 자신은 그것을 어떻게 순종했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방법이 베드로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리고 나에게 보이신 말씀과 뜻을 먼저 전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으며, 과연 나는 그 말씀에 어떻게 순종했는가, 를 나타내고 증거합니다. 사람이 드러나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서 이루셨고 또한 완성하셨음을 말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간증으로 인한 결과를 보면, 유대인 성도들이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 안에서 합당한 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3.

 

(19, 20)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죽고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성도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대부분 유대인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만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 몇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어떤 화려한 언변이나 논리적인, 설득력 있는 말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그들로 인해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이와 같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즉 겉으로 볼 때는 보잘 것 없는, 큰 능력이 없는 (있는지 없는지 지금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작은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순종을 실제 삶을 통해 나타냈습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님께서 이와 같은 마음과 행동을 우리에게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4.

 

(23) 바나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그 곳에 "많은" 수의 믿는 자들이 있어서, 훌륭한 교회의 건물이 세워져서, 기뻐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수다한 믿는 자들로 인해서 기뻐했을 것이지만, 바나바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사랑으로 행하신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그 기뻐함으로 인해 더욱 더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모임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 인한 기쁨, 즐거운 보다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 은혜로 나타내신 것들을 볼 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교회의 성장, 부흥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 주님께서 일하셨음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로, 교회에 어려움이나 문제들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그와 같은 것들을 다루시는 방법들을, 과정들을 볼 때 또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성도 간에 주님의 은혜 가운데 더욱 거하라고 권면할 수 있으며, 또한 주님의 은혜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보도록 위로할 수 있습니다.

 

 

 

5.

 

(26)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Christian의 의미는 주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으로 분별이 됩니다. Korean, American 과 같은 의미로 이해가 됩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됩니다. 세상이 아닌, 사단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 즉 이방 지역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는데 필요했던 것은 단지 구원으로 모임에 더해진 것 이상이었습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그들은 바나바와 사도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가르침은 이론적인, 지식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었을 것으로 분별합니다. 또한, 가르침을 받고 그들의 삶은 계속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구원 받은 자의 합당한 삶, 모습 등을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받고 실제적인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데까지 자라갔을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그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거듭남으로 그리스도에 속한 자,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말씀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따른 우리의 삶, 생활, 모습입니다. 말씀과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에 속한 자답게, 말씀에서 말하는 것과 같을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거듭난 자라는 사실을 선하게 간증하며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6.

 

(28, 29)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냅니다. 당시 흉년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을 때, 그들은 다른 성도들을 돌아봅니다.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씀대로, 흉년은 유대 지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 천하가 그러했을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먼저 생각했고, 그들이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다른 성도들을 위해 각각 그 힘대로 연보를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으나, 유대인, 이방인을 나누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성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그 무엇도 나눌 수 없음을 알고 실행한 것입니다.

 

갈 3 :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모임 안에서 연보나 봉사는 믿음의 년수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성도들은 어려움 가운데서 유대 성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바나바로부터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함 받은 대로, 또한 사도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주님의 진리에 따라 가르침을 받은대로 행한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