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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몇 가지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23)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고,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행해져야 하는 곳은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에서 말씀하신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연이어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거하게 될 성읍, 그들의 거처가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계신,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가능합니다. 또한, 그들은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알아가는 것은 일회적인, 단회적인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육신으로 이 땅 가운데 거할 때는 항상 배워야 합니다. (26) 또한, 그 곳에서, 여호와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구원 받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세상에는 기독교라고 하는 이름 하에 여러 기관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신학교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성경에 대해서 가르치는 기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르쳐져야 하는 곳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신학교에, 신학대학원에 그와 같은 이름을 두신 일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곳은,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의 논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와 같은 모임에서 배우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다. 여기서는 배울만한 것이 많지 않다,더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 모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대로 교회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공중재림 때 교회가 휴거되기 전까지, '항상' '교회'에서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이후에는 이 세상 가운데 교회가 없어지고,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해, 주님에 대해서 직접 대면하여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까지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무엇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지 항상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경외하기를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여호와 경외하기에 대해서 배울 수 있도록 단 한 가지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칠 때는, 오직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어서 성도들 간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즘에는 많은 주석들과 신앙 서적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것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서적에서도 여러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임 가운데서 하나님을 가르치는데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그것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구절들의 경우에는 다른 서적들을 통해 참고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방향은, 말씀 그 자체를 읽고, 그것을 묵상함으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교제가 기쁨 가운데, 즐거움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말씀입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이름을 따라, 말씀을 따라 모이는 성도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함께 교제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교제를 나눴던 것처럼, 성도들 간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교회에서, 모임에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두신 곳으로 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곡식, 포도주, 기름 등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 25) 하지만, 예외적인 부분을 말씀해주십니다. 성막의 위치가 너무 멀거나 혹은 가는 길이 험난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서 성막 근처로 가, 그 성읍에서 마음에 원하는 것을 사서 하나님 앞에 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구원이나 만찬 예배 등과 모임의 핵심 원리와는 다르게 분별이 됩니다. 구원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조금 쉬운 길이 없습니다. 만찬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그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다른 이들을 배려해서, 대안을, 차선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것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려했을 때, 다른 길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 신명기 14장에서 기록된 것은, 그 외 주님을 섬기는 다른 부분에 있어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 각 섬김의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 멀다, 행로가 어렵다, 라고 하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같은 거리라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길이 가깝다, 행로가 그리 어렵지 않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 믿음의 분량에 따른 자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멀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돈을 가지고 가서 성막 근처에서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풍부히 주신 것을 그대로 가지고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성막이 너무 멀고, 가는 길이 어렵니? 그러면 그 거하는 성읍에서, 각자 집에서 하나님을 섬기렴, 그 곳에서 우양과 포도주를 먹으렴, 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하지 않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신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가운데 부담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기본적인 원칙은, 곡식을, 포도주를, 기름을 있는 그대로 직접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모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섬기는 것도 그렇습니다. 변하지 않는 원칙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원리, 성도로 영접 되는 것, 만찬 예배 등이 그것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자유함이 주어집니다. 물론,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유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과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모임의 섬김에 있어서 억지로 하는 것, 기쁨이나 사랑이 없이 행하는 것, 마음에 '큰' 부담을 가지고 하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적인' 부분에 있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때는, 감당하지 않는 것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은 기쁨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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