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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oug Kelley  on  Unsplash

 

1.

행 24 :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에 이끌려 간 이후,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왔습니다. 대제사장과 함께 온 변사 더둘로는 대제사장과 여러 장로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총독 벨릭스에게 말하기를, 그로 힘입어 태평을 누리며,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인해 감사를 표합니다. 당시 이들은 로마의 압제 속에서 그 법과 규칙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과 여러 규례일 터이나, 그들은 로마로부터 점령 당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지만,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로마의 총독에게 여러 모양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 답지 못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는 모습은 지금의 기성 교회에서 주님을 섬긴다 말하는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로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전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의 간증이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와 같은 사람들을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구원은 그 삶과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 같이 진실한 믿음 없는 삶이 그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리스도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담느냐의 정도와는 상관 없이 방향성이 주님을 닮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 문제에 있어서, 죄의 문제에 있어서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총독 벨릭스 앞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총독에게 감사를 드린 유대인, 장로들, 대제사장과 달리 그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도를 좇아,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향한 부활의 소망 또한 가졌음을 담대히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야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하려 노력한다 말합니다.

행 24 :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 말하는 그리스도의 도를 분명히 좇는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 시선, 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지는 말씀을 통해 분별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그것은 믿기에 합당한 것이며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거절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제 그리스도를 경험한 사도 바울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의 도를 좇아 행합니다. 그를 판단하려는 로마 총독 앞에서 다른 모든 이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잘못된 교리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새도 바울은 자신의 미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믿는다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특정 부분만 인정하고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믿는 것은 어떤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서, 내가 선호해서, 내 기준에 합당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말씀을 잘못 분별하고 있는 것이며 말씀 앞에 교만하게 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는 근거가 되는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 또한 지으셨으며, 죄인 된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호불호가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3.

행 24 : 15, 16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습니다. 쉽게 말해 착하게, 선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그와 같이 살았을까요? 분명히 죄와 불법, 악한 것들은 그리스도께서 다 사해주셨는데 말입니다. 성경에서 그럴 수 없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6 : 1, 2)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삶을 마치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 때 분명히 죄인과 의인으로 나뉘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우리는 의인으로 천국에 들어갈터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에 대해 나타낼 때 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수도,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죄사함을 얻었다고 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 때문에 피 흘리시고 죽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주님의 피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를 생각할 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선행과 양심에 따라 행하는 것이 천국에 가기 위한 목적으로 말미암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선하게, 의롭게 설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양심에 따라 행하는 것은 주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고 증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섞여 그리스도인인지, 세상 사람인지 드러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우리에게 분명히 주어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원 받았으니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 의인이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세상을 대함에 있어서도 역시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온전히 그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모든 능력과 권세를 다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셨으나 모두 내려놓으시고 사람을 대하심에 있어서도 양심에 전혀 거리낌 없이 행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으로부터 본을 받아 하나님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양심에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운 것이 없게 행하는 것입니다.

 

4.

행 24 : 24 - 26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총독 벨릭스는 사도 바울의 판결을 뒤로 미룹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불러 아내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전할 때, 지금은 가고 나중에 다시 듣겠다고 말합니다. 벨릭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서 듣고자 했습니다. 선택해서 받아들이고 믿고자 했습니다. 위에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을 불러서 자주 이야기 했으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알고자 함이 아니라 그로부터 돈을 받을까 바라는 의도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롬 10 : 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일부만 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든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이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내가 받을만한, 내가 필요한 말씀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복을 위해, 내 귀에 듣기에 좋은 말씀만을 내 지식과 판단으로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어린 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다른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면, 교회에 나오면 세상 일이 잘 풀리고, 여러 가지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하신, 전능하신 참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듣는 것이고 섬김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섬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 모임 안에 섬김에 있어서 이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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