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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증거하신대로 (행 20 : 23) 결박과 환난을 당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행 21 :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행 22 : 22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행 23 :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행 23 : 12, 13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사도 바울이 자신의 구원을 간증하고 그 가운데 함께 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했을 때, 유대인들은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스스로 변호하고 주님에 대해서 전할 때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의 심령은 어려움 가운데 직면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열매가 있기보다는 오히려 고난과 핍박, 환난과 결박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미리 사도 바울을 그와 같은 일을 위해 택하셨으나 (행 9 : 16) 또한 사도 바울도 알고 있었으나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을 주님께서 위로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비난하고 등을 돌릴 때, 오직 주님께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며 그를 격려하십니다.
행 23 :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울을 죽이고자 했으나, 바울을 미워하고 싫어했으나 주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계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이 구원 간증을 하고 주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한 일에 대해 많은 유대인들은 싫어하고 듣기를 거절했으나,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의 일을 증거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일을 칭찬하십니다. 사도 바울에게 주님의 일을 증거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도 동일하게 주님의 종으로서 합당하게 주님의 일을 증거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일을 경험합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함께 있기를 싫어합니다. 말씀에 기록된 복음에 대해서 전할 때 듣기를 싫어합니다. 거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때, 마음 속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 말을 하는 이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떻습니까? 그와 같이 주님의 일을 증거하는 이와 함께 하십니다. 모두 떠나가도 주님께서는 곁에 계십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비난해도 주님께서는 위로하십니다.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그가 주님의 일을 증거했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삶을 돌아봐도 사도 바울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직장에서 주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란, 주님에 대해서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복음을 지속적으로 전할 때 나의 사회 생활, 인간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항상 그와 같이 고민합니다.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결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핍박과 비난이 있을 것입니다. 서신서 여러 부분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그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나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주님에 대해 전할 때, 주님께서는 함께 하시며 위로할 것입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고 판단하시는지, 평가하시는지, 나의 인생의 목표를 그것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내가 생각한대로 모임의 일을 이루어나갈 수 없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가 온전히 말씀 가운데 순종할 때, 주님께서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그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까지 주님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그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이와 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주님께서는 그만하니 이제 쉬어라, 마음과 몸을 회복한 후 다시 나의 일을 전하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삿 8 : 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어떤 형제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기드온과 삼백명이 미디안 족속을 모두 격파하고 전쟁해서 승리한 후, 그들을 계속 쫓았습니다. 미디안이 요단을 건너서까지 도망갔을 때, 기드온과 삼백인은 요단에 이르러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건너서 계속해서 미디안을 쫓았습니다. 이 때, 그들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기를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여러 가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한 밤 중에 미디안의 진을 급습하느라고 잠 한숨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단을 건너서까지, 끝까지 미디안을 추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피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피곤하나 따르며' 라고 기록하신 것입니다. 기드온과 삼백명은 피곤했으나, 온전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데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온전히 충성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와 같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여기까지면 됐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라는 주님의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지친 사도 바울에게 힘을 주시며, 계속해서 주님의 일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히 12 :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딤후 4 :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또한 교훈을 받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 모임에서 어떤 일을 감당할 때, 이만하면 됐다, 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멈추지는 않습니까? 이 정도면 할만큼 했다,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머뭇거리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서신에서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마지막까지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 세상과 타협하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빌 3 : 12 - 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물론, 위 말씀은 주님께서 이루신 부활에 대해 기록된 말씀입니다만,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주님께서 이루신 것, 푯대를 향해,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한 바라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끝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까지, 주님을 닮는데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2.
행 23 :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행 23 : 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주님을 닮은 사도 바울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으나, 그들은 주님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자 했습니다. 강도인 바라바를 풀어주고 주님을 대신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했습니다. 그 재판을 담당한 빌라도는 주님의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주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눅 23 :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눅 23 :18 - 25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요 18 : 38 - 4-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죽을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박당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끝까지 참으신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보이신 본을 생각하며, 그 앞에 당한 결박과 죽음을 감수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증거함으로 인해 환난과 결박을 당했음에도, 로마에 가서도 동일하게 주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길을 미리 주님께서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가신 고난과 어려움의 길을 분명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보이신 본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미리 가신 그 길을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피조물된 사람으로부터 핍박과 고초를 당하시는 길을 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는 그 길을 택하셨기 때문에 그 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우리는, 주님을 닮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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