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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klimkin from Pixabay  

 

본문에 기록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의 병고침은 믿지 않는 자들이 경험하는 구원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16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 앉은뱅이의 고침은 완전히 낫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은 '믿음'을 통하여 그는 완전히 낫게 된 것입니다. 그가 성하게 된 것은 생명의 주 되신 그 이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특징들을 함께 살펴보면 먼저,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2) 처음엔 걷거나 뛸 수 있었으나, 중간에 어떤 사건으로,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씀으로 이 사람의 병을 고치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은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인 것입니다. 평생을 아무런 소망이 없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와 같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죄의 열매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의 정해진 운명은 평생을 죄인으로 살다가, 죽음 이후에 우리 각자가 가진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의 범회함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미문에서 구걸을 하며 살던 앉은뱅이와 같이, 인생 가운데서 나름대로 무엇을 이루려고, 행하려고 하지만 결국엔 그 가운데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의미가 없는 삶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베드로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 능력으로 걸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6)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말했을 때, 그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병고침을 받은 후 먼저 서고, 걸으며, 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함께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서도록, 걷도록, 뛰도록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받은 구원도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미 이루신 그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서 바로 섰으며, 이제는 주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전에는 서지도 못했으나 이제는 바로 설 수 있으며, 점점 걷게 되고, 나중에는 뛰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 : 2)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 1 : 6)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 : 9, 10)

 

그리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 분께 예배를, 영광을 돌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죄에서, 세상에서, 어둠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또한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이제는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 : 5, 6)

 

그 앉은뱅이의 걷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10) 그의 변화를 보고 놀란 것입니다. 분명히 걸을 수 없는 자였으니 이제 걷게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베드로는 설명합니다.

 

어떻게 그가 걷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주 되신 주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살리셨고, 그를 통해서 우리를 앉은뱅이가 걷게된 것과 같이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를 원한다고 전합니다. 그 결과는 4장에 이어지는 바와 같이 사도들이 잡혀 갇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또다른 결과가 있습니다. 바로 말씀을 들었던 사람 가운데 많은 자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기이히 여겨야 합니다. 왜 그와 같이 살아가는가, 미련하게, 합리적이지 못하게 살아가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가치관, 인생의 우선순위들을 이해할 수 없어야 합니다. 왜 저럴까? 라고 하며, 이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가진 가치관에 대해서,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분명히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결과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겪게되는 핍박과 어려움, 고난 등이 있을 것이고, 또다른 것은 믿는 자가 더해질 것입니다. 분명히 내가 삶을 통해 나타낸 간증과 그 간증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전할 때, 어려움이 오지만 동시에 주님을 믿는, 성도로 더해지는 자가 생길 것입니다. 핍박이 없이, 구원의 열매들만 있지 않을 것이며, 또한 아무런 의미 없이 어려움만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다 하나하나 아실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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