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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들, 사두개인들은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을 잡아서 가두었습니다. 또한, 그들로부터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권세를 묻고, 누구의 이름으로 행하는지를 물었을 때, 그 대답을 들은 이후 힐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제자들을 책잡을만한 어떤 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그들의 선택은 이후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없도록 그들을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위협에 대해서 베드로와 요한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관원들은 그들을 벌할 도리를 찾지 못했으나, 다시금 그들을 위협하여 놓아 주게 됩니다.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들, 사두개인들은 유대인 중에서도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서,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길 뿐, 실제로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 소망, 경외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행위만을 형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뿐, 마음과 생각은 오직 그들의 이 땅에서의 삶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특히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더 세속적으로 생활했습니다. 산헤드린을 장악한 이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그들의 사제 직분과 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을 듣고, 더 이상 힐난할 것을 찾지 못했음에도 그들은 위협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합니다. 그들의 삶 가운에 어떤 흠 잡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주님의 부활하심에 대해서 증거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행한 근거는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병든 자가 건강하게 되었고, 천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름 역시 그리스도 한 분 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높아지기 위한,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은 오직 그들에게 맡겨진 주님의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 하에,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 가운데, 인도자가 있습니다. 그 인도자들 가운데는 오늘 기록된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들, 사두개인들과 같은 관원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교회를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세상의 바른 교훈에 대해서,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말들에 대해서, 지식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전할 뿐, 말씀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베드로, 요한과 같이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임이나 교회를 핍박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비난하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무리들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행동이, 그들의 말이 옳았던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애써 부인하고 그들을 위협했던 것과 같이,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부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대로 세워진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어려움과 핍박, 고난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말씀의 방향을 따라 교회를 세우는 것과, 세상의 방법, 지식, 사람의 논리에 따라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서 세상은 비난하고 위협할 것입니다. 이 때,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비난하는 내용에 대해 과연 무엇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세상은 오히려 그 교회를, 모임을 인정하고 힐난할 바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믿는 자들은, 각자의 삶에 있어서도 주의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억지로나 의무감에서 나오는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함으로 마땅히 순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육신의 연약으로 때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가치관은 말씀과 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같이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도 같이 원하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나도 또한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 때, 세상은 우리를 책망하지 못합니다. 힐난할 바를 찾지 못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잘못된 점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하는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31 - 35) 마찬가지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합당히 전하며, 우리가 전하는 그 말씀에 합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1)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것입니다. 상황이나 환경과 관계 없이 믿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성장과 유익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이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자 의무, 책임인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듣고 믿은 것, 깨달은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며, 그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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