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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 민족 vs 이스라엘 백성
* 세상 vs 하나님의 자녀
(1) 가나안 땅에 있었던 일곱 족속들에 대해서 모세는 말합니다.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
(7)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놓으신 땅으로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그 곳에 있는 많은 민족들은 여기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보다 수효가 많으며, 힘이 있는 민족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방 민족들을 향해서 이스라엘이 취해야 할 태도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 - 6) 그들과 화친을 해서는 안되며, 그들을 진멸해야 함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끼칠 영향으로 (4)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아시고 (17) 그 많은 수효의 민족들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까, 하는 근심과 염려는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8) 오직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말씀하십니다.
(7)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은 그들이 지혜롭고, 뛰어난, 충성된 민족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은 연고였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처럼 (8) 첫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둘째로, 그들의 열조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맹세하신 말씀을 친히 지키시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나오게 하셨고, 가나안 땅까지 이끄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믿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 문화 등 에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특히,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일 때 더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일지라도,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일지라도 말씀에 합당한 것들이 아니라면, 믿는 사람들은 그것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의 이방 민족들의 수효가 많고 힘이 있었던 것처럼, 세상에서 강요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맞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 이론들에 대해 믿지 않는 자들은 물론이고, 기성 교회들도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정해놓으셨습니다. 확실하게 정해놓으셨습니다. 가나안 땅의 이방 족속들과 절대 교류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그것의 방식에서부터 사소한 것들까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으로 완성된 것에, 더이상 사람이나 세상의 생각, 방법들이 들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덧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으로 충분하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식양대로, 재료대로 지었고 그 외에 더해진 그 무엇도 없었던 것처럼,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말씀 외적인 것이 들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 앞에 바로 세워지는 데 있어서, 세상의 생각, 사람의 생각이 들어올 여지는 없습니다. 말씀을 사람의 마음대로 분별, 해석,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의 재료, 식양을 모세로부터 듣고, 있는 그대로 세웠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동일합니다.
모임 안에 더해진 지체들의 구원 간증을 들어보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된 사실 한 가지는, 각자의 죄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스스로 해결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해 주신 사실을 마음 가운데 믿고 받아들였단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더해진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8)
요일 4 : 9, 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바 되었습니다. 그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죄 가운데서, 멸망 가운데서, 사망 가운데서 건지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8)
벧전 1 :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엡 1 :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그 아들을 미리 예정하셨고,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지역 교회의 지체로 더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노력이나 행위, 선행이 근거가 아닙니다. (6)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 율례를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거룩한 칭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인해, 그 분의 거룩한 성민으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 분께 예배와 경배와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일하게,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두 완성해 놓으셨고, 우리는 그저 그것을 믿음으로 거저 얻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와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기성 교회들은 이와 정 반대로, 우리들의 행위로, 물질로, 능력으로, 선행으로, 봉사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은혜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은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노력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사실에 대해서 마음 가운데 받아들이고 믿을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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