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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로운 것들

 

30 : 2 - 5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잠언 30장에서 아굴은 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총명이 없는, 지혜를 배우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는 것, 세상을 창조한 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지혜 없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 총명 있는 자, 명철 있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세상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를 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 다른 사람과의 관계, 대인관계를 잘 맺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선하게 생활하는 사람, 세상에서 재물 모으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 경제적 요소들을 고려하여 사업의 효과성을 극대화하는 사람 등 지혜애 대한 세상의 의견은 참 다양합니다.

 

그러나 비단 잠언 30장에서 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지혜는 여호와를 아는 것, 경외하는 것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자들은 오히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며 미련한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1 :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30 : 24 - 28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동일한 말씀, 잠언 30장에서는 땅에 있는 가장 지혜로운 것 네 가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네 가지 지혜로운 곤충 혹은 동물들을 통해서 영적으로 교훈 받은 내용들을 함께 교제하고자 합니다.

 

(24)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땅에 있는 지혜로운 것 네 가지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들은 모두 작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혜로운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위대해보이거나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아닙니다. 작다고 하는 특성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외적으로는 오히려 보잘 것 없어 보이거나, 미련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지혜로운 것 넷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네 가지 동물들이 지혜롭다기보다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지혜로운 것들임을 말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것, exceedingly, 흠정역에는 지극히 지혜로운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이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 땅에서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지혜임을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쉽게 지혜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나 범주를 벗어나서 지극히 가장 지혜로운 특징들을 네 가지 동물이 가지고 있음을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고민해볼 때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지혜를 하나님을 아는 것, 경외하는 것,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 네가지 동물들이 가진 지혜는 세상에서, 이 땅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 총명을 이 동물들이 가지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네 가지를 생각할 때, 이 동물은 오늘날 지역 교회의 구원 받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약해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큰 비밀을 아는 자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를 간직한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그 어떤 지혜와 비교할 수 없는 지혜를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1. 개미

 

(25)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지혜로운 것 첫번째로 개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미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개미는 힘이 없는 종류입니다. 스스로 힘이 없음으로 무엇을,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종류입니다. 스스로 강하다, 지혜 있다, 힘이 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는 종류로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자입니다.

 

18 : 9 - 1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에서는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번째 기록된 세리를 통해서 개미와 같이 힘이 없는 종류임을,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은 힘이 없는 자입니다. 특별히, 죄의 문제 앞에 설 때에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나는 의로운 사람이다, 죄가 없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되, 겉으로 볼 때 삶이 더 깨끗해보이고, 의로워보이는, 선해보이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스스로 어떤 자임을 진정 깨닫고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세리가 더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힘이 없는 자입니다. 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자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사실 앞에, 우리에게 베푸신 한량 없는 은혜 앞에 나가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개미의 특징은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개미의 대략적인 수명은 6개월에서 1년이라고 합니다. 여왕개미는 약 5년에서 10년 정도의 수명을, 수개미는 6개월, 일개미와 병정개미는 약 1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개미들이 어떻게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할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개미들은 겨울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다가 올 겨울을 그들은 예비합니다. 실제로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겨울을 예비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겨울이 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정말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자만이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확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사람에게 적용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죽음 이후에 분명히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유무에 따라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으로, 그렇지 못하고 평생을 죄 아래서 종노릇 하던 자들은 지옥으로, 불못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실제적으로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분명히 해결해야 합니다.

 

개미가 겨울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 것과 같이, 우리가 분명히 죄로 인해 심판 받을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으나, 첫 사람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심으로 죄와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그 죄를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을 주시어 죄에 대한 심판이 분명히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후 세계는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며 행한대로, 행위대로 심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우리는 분명히 확신해야 합니다.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죽음 이후에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그 죄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개미는 겨울이 왔을 때 겨울을 예비할 수 없습니다. 준비할 먹을 것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늦은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죽음 이후에 자녀들의 문제, 재산 문제 등 산적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정말 준비해야 하는 죄에 대한 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그 사실을 말씀 가운데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 주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내 죄를 대신 갚아주셨음을, 대속하셨음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 하늘의 소망을 가진 자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여름에 먹을 것을 준비하여 겨울을 대비하는 지극히 지혜로운 개미의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6 :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6 : 14 - 16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6 :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7 :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구약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고자 하실 때, 노아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전까지는 세상에 비가 한 번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산 위에서 방주를 예비합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를 일으켜 심판하시겠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심판이 왔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행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24 : 37 - 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 시대의 다른 사람들은 어떠헀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인자의 임함이 바로 이와 같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노아 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같습니다. 미래를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이 생에서 가까운 미래만을 고민하고 대비할 뿐입니다. 죽음 이후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 교제를 할 때,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죽으면 무엇인가 있겠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부분을 고민하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먼저 바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자들은 여름에 먹을 양식을 전혀 예비하지 않는 개미와도 같습니다. 겨울이 왔을 때, 분명히 후회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 이후의 문제를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선행이나 노력, 봉사, 열심을 통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개미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여름에 예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 겨울이 찾아 왔을 때, 준비한 먹을 것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을 것입니다.

 

 

 

24 : 32 36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또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생길 때, 여름이 가깝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식물을 보고 계절을 짐작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의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앞 부분에는 말세에 어떤 일이 생길지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일을 볼 때,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아는 것입니다.

 

벧후 3 : 3 10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노아의 때 사람들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했습니다. 이제 이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었습니다. 곧 심판과 멸망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특별히, 지혜로운 개미는 겨울과 전혀 반대되는 시기인 여름에 그것을 예비합니다. 여름엔 먹을 것이 풍성하고 전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왜 겨울을 예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풍족하고 어디서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은 또 말합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이 계속 등장함으로 인간의 생활은 점점 더 편안하고 안락해지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왜 멸망하게 되느냐고 되묻습니다. 개미가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것처럼, 겨울이 오기 전에 예비하는 것처럼, 우리는 구원의 문제를 지금 당장, 심판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신 대로, 죽음 이후의 일들을 이미 준비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땅에 있는 지혜로운 것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2. 사반 (오소리, 바위너구리, 토끼)

 

(26)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사반 역시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앞에 개미가 가지고 있던 특징, 힘이 없는 것과 유사합니다. 사반은 약한 종류입니다. feeble folk, 힘이 없는 종류입니다. 쉽게 공격을 당하고 무너지고 넘어지는 종류입니다. 강한 적들에게 항상 먹잇감으로 위협을 당하는 종류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반은 바위 사이에 집을 짓습니다. 흠정역에는 crags, 험한 바위산에 집을 짓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약한 종류이기 때문에 집을 바위 사이에 지음으로 바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집을 짓기에는 지푸라기나 수풀, 나무 등지에 짓는 것이 편합니다. 집을 짓는 재료를 쉽게 찾을 수 있고, 그와 같은 곳들이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위보다 생활하기에 더 편리합니다. 먹을 것도 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반은 바위 사이에 집을 짓습니다.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약하며 쉽게 넘어집니다. 또한, 구원은 받았으나 여전히 세상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유혹과 우리들의 마음을 끄는 악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빠져 살아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과신함으로, 신뢰함으로 자신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를 구원하신, 반석 되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고전 10 :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62 : 2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62 : 6, 7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있는 분께 피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이 세상 가운데서 내가 아닌, 보이는 것이 아닌, 세상의 주된 흐름이 아닌,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반석이 아닌, 험준한 바위산이 아닌, 수풀에, 지푸라기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쉬운 길이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며 쓸데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돈을 의지하고, 지식을, 재물을, 사람을 의지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인 주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말씀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단지 지식적인, 피상적인 앎이 아니라 실제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여러 섭리과 능력들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들을 통해서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평탄한 곳에 집을 짓는 것보다, 수풀에 집을 짓는 것보다 바위 사이에 집을 짓는 것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어떤 자는 그대로 갓 구원 받은 상태를 유지하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말씀 안에서 주님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배우고 알아갑니다. 점점 영적으로 성장하고 자랍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분부하신 집을 잘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 3 :11 15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은 우리들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은 모두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원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과 함께 상을 받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나무나 풀이나 짚이 아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워야 합니다.

 

6 : 19 - 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12 : 33, 3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이 땅 가운데 보물을 쌓아 두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낡아지지 않은 것입니다.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3. 메뚜기

 

(27)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메뚜기의 특징은 임군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왕이 없다는 것입니다. 메뚜기 가운데 어느 한 메뚜기가 대장이 되지 않습니다. 한 메뚜기가 다른 모든 메뚜기들을 통솔하거나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떼를 지어 나아갑니다. 어떤 메뚜기의 진두지휘 아래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는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거나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디가. 그럼에도 그들은 다 떼를 지어 갑니다.

 

메뚜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모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왕을 구했습니다.

 

삼상 8 :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 : 20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그들이 왕을 구한 이유는 열방과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시고 열방과 같이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실제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고 열방보다 더 높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열방과 같아지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강청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볼 때 우리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메뚜기는 왕이 없음에도 다 떼를 지어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마음이 나뉘어져 함께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사울과 이후에 두 번째 세워진 다윗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은 다윗과 사울로 마음이 나뉘었습니다. 이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또 다윗과 압살롬으로 마음이 나뉘었습니다. 다윗 다음의 왕 솔로몬 이후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으로 또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사람들의 마음이 나뉘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왕이 있었음에도 함께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셨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마치 메뚜기떼와 같이 임군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부터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광야 생활 동안 그들을 지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베푸셨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분명한 왕이시며 임군이셨습니다. 인도자인 모세와 여호수아가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대언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분명한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따를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메뚜기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지역 교회의 합당한 모습은 주님께서 주인 되신 곳입니다. 주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값 주고 사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장로의 역할을 하는, 교사의 역할을 하는 성도들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에 따라 합당히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혹은 사람들이 높아지거나 드러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마치 임군과 같이, 왕과 같이 교회 안에서 사람이 세워지고 영광 받는 것은 합당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메뚜기 떼와 같이 주님께서 주인 되신, 왕 되신 것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순복함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지역 교회의 진리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됨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분명한 왕은 주님이십니다. 만약 주님께서 세우신 지역 모임 가운데서 사람이 드러나고 높아진다면, 이스라엘과 같은 모습이 교회 안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나뉘어지고 갈라서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통해 분쟁이 있었던 지역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나뉘었던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아볼로에게, 베드로에게, 등 사람을 보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세우시고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모임이 세워져 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임군을, 왕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메뚜기는 또한 '' 떼를 지어 나아갑니다. 몇 무리로 나눠지지 않습니다. 몇 마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다 떼를 지어 움직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특별히 지혜로운 사람들은 마음 속에 기준을 세워 두고 그 기준에 합한 사람들과만 함께 교제하고 사귐을 갖습니다. 그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이나, 혹은 어떤 일로 인해 기준 밖으로 벗어난 사람과는 함께 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코드가 통하는,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사람과만 함께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역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모습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고전 12 :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 :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고전 12 : 24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고전 12 :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물론, 성도들도 각각 다른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인간적으로 봤을 때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서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한 몸입니다. 그리고 그 몸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인 지체의 각 부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역 교회 안의 성도들은 분쟁이 없이, 편당이 없이, 나뉨이 없이 다만, 많은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볼 책임을 같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만 돌아보고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지체가, 모든 지체가 함께 같이함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고전 12 : 4 - 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역 교회 가운데서 같은 주님을 알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같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 역시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이 다를지라도 함께 교제하며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메뚜기는 또한 떼를 지어 '나아갑니다.'

 

4 : 13 - 16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인은 구원 받고 지역 교회 가운데 더해집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1 : 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자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것에만 만족하며 영적인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세상의 여러 풍조와 유혹에 밀려 흔들리거나 요동하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행하며, 주님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10 : 19, 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길은 성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찢으신 휘장을 지나 하나님 앞에 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그 새롭고 산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0 : 38, 39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닙니다. 퇴보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주님을 향한 믿음을 말미암아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 전진은 바로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4. 도마뱀 (lizard, spider 거미)

 

 

(28)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도마뱀은 왕궁에 거합니다. 왕궁에 있는 대신 도마뱀은 여러 위협과 고난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왕궁 밖에 있을 때보다 잡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하면 사람들에게 잡혀서 내쫓길 뿐만 아니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마뱀은 왕궁에 계속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을 때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도마뱀의 이와 같은 습성이 정확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동남아시아나 다른 국가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대부분의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들은 삶의 형편이 어렵습니다. 주거 형태도 우리나라와 같이 발달된 형태가 아닙니다. 자연과 굉장히 밀접하게 붙어 있으며 거의 모든 집들이 마당을 가지고 있거나 대문이 따로 없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밖에서 무엇인가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쉬운 구조입니다. 제가 생활했던 집도 그러했습니다. 처음에 굉장히 신기했던 것은 도마뱀이 집 안에 들어옵니다.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입체감 있는 도롱뇽, 도마뱀이라기보다는 주로 벽이나 천장 등을 타고 이동하는 납작해보이는 것 같은 도마뱀이 집 안에 자주 있습니다.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제가 알지 못하는 집 안의 이 곳 저 곳을 누비는 것 같습니다. 보이다가 다시 안 보이고 안 보이다가 다시 눈에 보입니다. 현지 주민들이 말하기를, 도마뱀은 해충을 주로 먹는다고 하여 잡지 않고 집 안에 그냥 놔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도마뱀은 야생에서 생활하는 동물임에도 실내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도마뱀이 지혜롭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우리는 지금 어디에 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분명히 지역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알리신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세우신 이 곳에 거해야 합니다. 또 그것을 마땅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마뱀에게 있어서 왕궁과도 같은 이 곳에, 지역 모임 가운데 먼저 물리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그와 같다는 것은 모이기에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임의 정규 집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주일의 예배와 말씀 집회, 오후 집회와 평일에 성경 읽기, 기도 집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 곳에서 말씀을, 주님을 계속 배워야 합니다. 도마뱀이 왕궁에 있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들은 모이기에 힘 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이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육신적인 피로나 피곤과는 별개로 우리는 함께 모여 주님에 대해 나누고 말씀을 교제하는 것, 듣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로도서 합당한 모습인 것입니다.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우리는 정신적으로도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고전 6 : 19, 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구원 받은 우리의 몸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령님의 전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성령의 전으로서 합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때, 분명히 고난과 핍박, 위협,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도마뱀은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궁에 있다고 했습니다. 왕궁에 있다면 손에 잡힐만 할 것입니다. 지역 모임의 집회 가운데 꾸준히 참석하며, 성령의 전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할 때, 분명히 어려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할만한, 불가피한 여러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나의 집회 참석에 대해 불만을 갖는 주변 사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나의 마음 가운데 육신으로 인한 꾀가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거룩할 수는 없겠으나, 할 수 있는 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육신의 연약으로 인해 어려울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여러 부분에 있어서 믿음의 선진들이 겪었던 고난과 어려움, 핍박과 위협이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도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 즐거워하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라, 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때 우리보다 주님을 먼저 미워한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고난을 당하셨는가 생각할 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핍박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우리는 그렇지 않음으로 인해, 주님께 속한 자인 것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15 : 18. 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벧전 4 : 12 - 1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요일 3 :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은 이와 같이 질문합니다.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던 사도 바울의 인생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었습니까? 스데반이나 야고보와 같이 일찍 순교 당하여 목숨을 잃은 이들의 삶 가운데 어떤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지극히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또한 이와 같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왕궁이 아닌,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살고 싶은 그와 같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왕궁에 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것은 가치에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것에 인생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또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를 생각할 때 왕궁에 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84 : 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다른 어떤 곳에 오래도록 거하는 것보다, 단 하루를 주님의 궁전에거 거하는 것이 낫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과 함께 거하는 그것이 훨씬 더 가치있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편히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집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12 :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사람의 본분은, 인생의 의무는, 또한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온갖 것을 경험한 자의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10 : 32 - 37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는 이 땅의 고난과 핍박이 있을찌라도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을 바라는, 우리에게 예비된 큰 상을 소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으로 인한 상급과 칭찬을 받는 것,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망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것입니다. 늦거나 지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정확한 때에, 딱 맞는 때에, 합당한 때에 분명히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 결론

 

여기 기록된 네 가지 동물, 곤충들에 대해 성경은 땅에 있는 가장, 지극히 지혜로운 것 넷,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볼 때,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 이 네 가지 동물은 미련하고 바보 같으며 어리석은, 오히려 지혜가 없는 것 같은 것들입니다. 사람들의, 세상의 관점은 이와 같습니다.

 

개미는 경험해 보지도 못한, 그들의 생애 가운데 있지도 않았던 겨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양식이 풍부한 여름에 먹을 것을 왜 준비합니까? 충분히 지금을 즐기고 누리며 잘 살 수 있는데, 미련하게 먹을 것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사반은 굳이 험한 바위산까지 들어가서 집을 짓습니다. 편하게, 지푸라기나 잎사귀 등으로 집을 지어 살 수 있는데, 살기 불편하고 힘든, 어려운 곳까지 찾아 들어가서 그것을 의지하며 삽니다. 바보 같은 삶인 것입니다.

 

메뚜기는 그들을 통치하는 왕이, 임군이 없습니다. 그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떼를 지어 함께 나아갑니까? 자유를 버리고 통제 가운데, 규제 가운데, 집단 가운데 들어가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도마뱀이 왕궁에 거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곳이 위험하다면 나와야 합니다. 거기서 나와 밖에서 생활을 해야지, 왕궁에서 거한다고 도마뱀에게 도대체 어떤 유익이 있는 것입니까? 먹을 것이 풍부하지도 않습니다. 풍부한 것은 위협 뿐입니다. 그 곳에 거하면 심지어 그들의 생명까지 위협을 받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죽을 바에야 왕궁에서 나와 사는 것이 낫지, 도마뱀의 삶은 지혜가 없는 삶입니다.

 

 

위 네 가지 동물, 곤충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교제한 내용과 같이 말씀에 기록된 지혜는 세상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반드시 반대되는 방향의 것입니다. 세상에서 칭찬 받고 지혜롭다 여겨지는 것들은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어리석은 것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지혜를 좇고, 그것을 따르며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지혜를 가지고 생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와 같은 성도들과 저의 모습이 되기를 하나님 앞에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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