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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6장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결정하며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그 인생을 인도하시고 경영하시며 합당한 뜻 가운데서 도우시는 분은 하나님 이심을 여러 구절을 통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잠 16 : 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계획하여 실행하려고 해도, 그 실행에 따른 반응이나 응답, 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잠 16 :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우리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것을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을 의뢰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구절의 뒷 부분은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라고 말하고 있으나, 우리가 어떤 일을 주님께 맡길 때, 그것은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즉, 나의 행사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나의 경영하는 것, 나의 생각이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것과 일치된다는 것입니다.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각자 인생 가운데서 여러 가지 미래를 계획합니다. 가까운 미래, 먼 미래, 등 여러 가지 일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계획을 하고, 실행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내가 A라고 하는 길을 가려고 계획하고 실행한다고 해도, 실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잠 16 : 25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성공의 길,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하며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길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면, 주님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흠정역에서는 25절의 말씀에서 그 마지막은 사망의 길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만나고 경험하며 겪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이것이 과연 죽음의 길인가, 사망의 길인가,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때가 되어서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옳지 않은 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도 그러합니다. 주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을 우리가 바로 바로 이해할 수 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고 돌이켜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운데 있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잠 16 : 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우리가 인생 가운데 만나는 여러 가지 일이, 마치 우연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더라도,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성도의 삶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근무를 하다보면,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반을 뽑습니다. 1년 동안 어떤 학급을 담당해야 하는지, 동학년 선생님들이 처음 함께 모인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학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비 뽑기를 합니다. 이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1년 동안 어떤 아이들을, 어떤 학부모를 만나 함께 생활해 나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손이, 내가 뽑는 제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심 가운데 그 일이 결정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잠 16 : 10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 ; 중요성
* 말씀이 성도의 마음 가운데 있을 때, 그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 될 것
어떤 왕이 하나님을 아는 왕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왕이라면, 그가 재판을 함에 있어서,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함에 있어서 그릇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먼저 교훈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생각하게 합니다. 구원 받은 자라고 해서 그 말씀을 그 입술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구원 받았으나 말씀과 가깝지 않은 자들이 안타깝지만 있는 것입니다. 본문 구절은, 구원 받은 왕이 재판할 때,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왕의 입술에 있을 때, 말씀을 가까이 하는 왕이 재판할 때, 그릇하지 아니함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 1 : 2) 성도로서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며, 어떻게 생각하면 참 식상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성도를 섬기는 것,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 이 모든 것의 근거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며, 말씀을 통해 지역 교회 안에 함께 지체된 성도의 가치, 그 귀함을 알고 성도를 합당히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를,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섬김과 말씀을 통해 이해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또한 지역 교회는 어떤 실행에 있어서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을 통해 성도의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 등에 대해 교훈을 받습니다. 재판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아는 자로서, 그릇한 재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각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성도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자라면, 그릇한 섬김을 직장 가운데서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예를 들어 적용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교사의 입술에, 그 마음에 있을 때, 학생들을 대함에 있어서 그들을 그릇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말씀을 그 마음 가운데 품고 있다면, 늘 가지고 있으며 묵상한다면,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여 영적으로 합당한 길로 인도할 것이며, 자녀는 기쁨 가운데 부모에게 순종하며 주어진 위치 가운데서 성실히 생활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세상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선한 간증을 나타내고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잠 16 :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